Song "To die for - Sam Smith"
차라리 전쟁 같았던 지난날
아주 먼 옛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전에 태어나 이제는 제법 아저씨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랫배는 똥배를 넘어 나잇살이 되었고, 빠지는 머리카락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돌이켜 보면 긴 시간 동안 어찌어찌 살아내어,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신기하고 또 대견하기도 합니다.
결혼 당시 보증금 삼백에 월 삼십만 원짜리 원룸에 둥지를 틀며 남자의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소중한 나의 연인에게 70년대에나 유행했을만한 신파극을 강제로 떠안기며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포장해야 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 출근길 버스 안에서 눈물 없이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별한 기술도 변변한 인맥도 없던 20대 후반의 청년에게 남은 것은 열정과 오기뿐. 시베리아의 찬 바람보다 혹독한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다 깨지고 넘어져 피고름이 흘러나온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힘든 시기마다 나를 잡아 준 것은 지금의 아내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습니다. 비록 험난한 삶의 여정이었지만 그 속엔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척박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유난히 힘든 직업을 택하였음에도 묵묵히 참아내며 큰 어려움 없이 키워주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나의 스무 살을 찬란하게 빛내며 삶에 대한 목표를 키워준 아내. 그리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맞서 싸우며 치열한 삶을 함께 살아내었던 동료와 친구들.
그들의 존재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항상 누군가의 선함으로 누군가의 배려로 누군가의 도움으로 나를 일으켜준 그들이 있어 나는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 인 듯 살아가지만 결코 혼자 일 수 없는 나의 삶 속에서 그들은 오늘도 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름도 얼굴도 모를 테지만내가 있기에 그들이 있고,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모든 사람이 내 삶 속으로 한 발자국 들어와 서로의 삶에 기뻐하고 감동하며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또 한 발자국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해도 우승까지는 못했던 2002년의 축구대표팀처럼, 나의 삶 속에 들여놓은 응원단이 늘었어도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마음의 재질이었습니다.
손으로 쉽게 찢어지는 종이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는 유리로 만들어진 마음에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섞여 새로운 재질을 만들어낸 모양입니다. 거기엔 포스트잇도 있고, 손수건도 있으며 가끔은 금으로 만들어진 달마 부적 같은 것도 섞이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바닥엔 사람들이 던져 놓은 여러 물건들이 떨어지고 쌓여 푹신한 쿠션이 되었습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여러 종류의 배려는 세월이 지나 체화되어 이제는 무엇이 마음이고 무엇이 배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덕에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찔려도 아프지 않은 마음의 재질이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아프지만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게 되자, 앞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은 모르겠지만 일단 움직여보자. 보일 때까지 찾다 보면 결국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앞에 낭떠러지가 있을지, 가시밭길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부딪쳐도 깨지지 않을, 상처 나도 아프지 않을 마음의 재질이 되어버린 순간부터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치고 힘들었만 한 발자국만 더!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다 보면 결국 출구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이 출구가 아닌 입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올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끝이 없는 여정. 어쩌면 우리는...
인생은 세대를 넘어 세기를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수의 의미가 계속해서 변하며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긴 동물로서 존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시황이 애타게 찾았던 불로초를, 사실은 그 후예들이 살아 남아 계속해서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머지않은 어느 날 병마총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진시황을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려는 음모를 가진 세력이 영화처럼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요?(생각해 보니 이런 영화가 있었던 같습니다. 미라 3 였던가?)
어머니의 출구를 지나 새로운 입구에 들어선 적은 사실 그때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의 모든 정문이 입구이자 출구였고, 그동안 종사했던 어떤 직장의 문 또한 입구이자 출구였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의 문 또한 입구이자 출구이며 이 세상 모든 문들이 입구이자 출구입니다.
차원을 바꾸어 접근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내 마음속 고통의 방에도 문은 하나,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고독의 방 또한 문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들어온 곳으로 나가야만 되는 현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는 사실뿐일까요?
문을 들어서는 사람도, 나서는 사람도 모두 나 만이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대 최고로 멋진 캐릭터를 탄생시킨 드라마 도깨비의 마지막화에서 김신은 김선과 이별한 후 슬퍼하는 왕야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가 좀 얘기해줬음 좋겠다. 우리한테. 그만 되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하구"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조차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한 주인공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비록 고통의 주제와 강도는 서로가 많이 달라 혼자 살아가고 있음을 원망하며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릴지는 몰라도, 지금 세상 속에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걱정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잘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스스로 그 문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의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삶 속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위로하며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지금"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나와 당신의 삶은
굳이 누군가의 위로를 받지 않아도
충분히 정말 충분하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잘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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