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글/단편소설10

단편) #7. 부업(조과장의 연봉 협상 날) 석 달 동안이나 팀원들과 밤낮없이 매달린 프로젝트가 오늘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어제 임원진 회의에 다녀온 부장님은 오늘 계약이 성사되지 못하면 우리 모두 짐 싸야 한다며 아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새벽부터 바이어들의 세세한 기호에 맞춰 프레젠테이션부터 음료 취향까지 모두 세팅했던 김대리 덕분에 3시간이 넘는 긴 회의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며 결국 우리는 싸인을 받아내고 말았습니다. 현관 앞에 대기중이던 바이어들의 차량이 출발하고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우리 여섯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그 간의 노고와 기쁨을 서로 얼싸 않고 나누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장님은 법인카드를 들고와 전체 회식으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1차부터 3차까지 즐거움이 가득.. 2020. 4. 11.
단편) #6. 빗소리 TV 좀 꺼봐 여보. 빗소리 좀 들어보게. 그녀의 말에 나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무음으로 돌렸다. TV에는 유튜브에서 밤에 듣기 좋은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몇몇 악기들이 어우러진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화면엔 멋들어진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노랗게 석양이 진 호숫가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 장면이 계속해서 떠 있었다. 음악소리가 잦아들자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베란다 문을 다 닫아 놓은 상태에서는 빗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누군가 밖에다 천막을 쳐 놓은 것 마냥 투두둑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좋네~ 소파에 한껏 움크리고 누워있던 그녀가 몸을 반대쪽으로 뒤척거리며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했.. 2020. 4. 11.
단편) #5. 숲속의 다리미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고, 쫓기듯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주차장으로 달려가 시동을 건다. 즐겨 듣는 라디오에선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밝고 경쾌한 팝송이다. DJ의 오프닝 멘트가 끝났다면 지각할 확률이 높다. 서울의 도로는 3~4분만 늦어져도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기 때문에 아침의 1분은 1시간과 같다. 특히나 아침 7시와 7시 5분의 차이는 도착시간에 있어 30분 이상의 심각한 차이를 보이는 터라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서둘러야 했다. 집 앞 신호등만 받쳐 준다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었다. "Thunder, feel the thunder~. lightning and the thunder~" 노래 가삿말처럼 천둥보다 빠.. 2020. 4. 11.
단편) #4. 가디건 하루 종일 카디건을 벗지 않았다. 하늘은 비가 올 것처럼 온통 거무튀튀한 구름이 덮고 있었고 어제 들었던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쏟아질 거라고 들은 것 같았지만, 다행히 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대신, 시원한 듯 찝찝한 듯 애매한 상태의 날씨가 하루 종일 카디건을 벗어야 할지 그냥 입고 있어야 할지 수 없이 고민하게 만들었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거나 실내로 들어가면 텁텁한 공기가 카디건을 벗으라고 재촉하였고, 차에 가서 벗으려고 밖으로 나오면 금세 시원한 바람이 입고 있어도 괜찮다며 다독여 주었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하루 종일 카디건을 입고 생활을 하였다. 오늘 입은 가디건은 얼마 전 LG패션 상설매장에서 구입한 연노란색의 루즈한 카디건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항상 105 사이즈를 입었던 터라 항상 105.. 2020. 4. 11.
단편) #1-4. 사랑해... 하지만... 뭐 먹고 있었어? 그녀가 물었다. 어. 토스트. 그냥 식빵에 버터 조금 발라서 구운 거야. 당신도 줄까? 응. 맛있겠네. 그녀는 식탁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팔을 덮어 식탁에 엎드리며 말했다. 왜? 아직도 피곤이 안풀리는거야?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냥 약간 찌뿌등한 것뿐이야. 금세 괜찮아질 거야. 자기가 만든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예쁘게 웃음을 날려주는 그녀의 얼굴은 편안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그래. 금방 만들어 줄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냉장고에서 버터를 다시 꺼내 들고는 적당히 달구어진 팬위에 눌러 버터향을 입혔다. 식빵을 두 조각 꺼내어, 팬 위에 놓고는 식빵 윗면에 버터를 조금 덜어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식빵의 양쪽면에 골고루 버터맛이 배어 바삭해진 빵을 맛있게 익혀.. 2020. 4. 11.
단편) #1-3. 아침.. 긴 일주일의 피로 탓이었는지, 그녀는 9시가 넘도록 침대에 있었다. 얼마 전 부서장이 바뀌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새로 온 부서장은 본사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고객과의 큰 마찰 때문에 지방으로 좌천이 되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출근 첫날부터 엄청난 히스테리성 잔소리를 퍼부어 되며 사무실 모든 직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종이컵은 왜 이렇게 많이 쓰냐, 사무실 가구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분은 창가에 두어야지, 사무실 정 가운데 두면 안된다는 둥 아주 시시콜콜한 것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갖은 짜증을 부리며, 본인의 가슴속 울분을 다른 직원들에게 완벽히 전가시키고 있다고 했다. 직원 모두들 어떻게든 그 상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 2020. 4. 11.
단편) #3. 창문이 있는 집 "어제는 뭐했어?" 작지만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어제?" 왜 어제 일을 묻는 것일까?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어제는 별일 없었는데?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 수업 듣고, 도서관 갔다가 밥 먹고 집에 왔지. 요즘 매일 인강 듣느라 바쁜 거 알잖아." 입으로는 거짓말을 뱉으며 눈으로는 그녀의 표정을, 귀로는 숨소리를 쫒았다. 평소 눈치가 빨라 어떤 말이라도 금방 진실과 거짓을 구분 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친구들과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술 한잔 기울일 때 전화가 오면 아무리 주변을 조용하게 세팅하고 집 인척 연기를 해도 그녀는 단번에 알아차리곤 했다. 매번 어떻게 그렇게 족집게처럼 알아맞추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오빠. 요즘 핸드폰은 기술이 발전해서 공기가 전달되. 알지?.. 2020. 4. 11.
옥탑글방_단편) #1-2. 설거지 싱크대에 담겨 있는 그릇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제저녁은 그녀가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던 참치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오이무침이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밑반찬을 통에 담긴 채로 꺼내 먹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접시에 조금씩 담아내었기 때문에 그릇이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정도 양이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오랜 자취생활을 했던 터라, 집안일에는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설거지, 세탁, 청소, 음식까지. 나는 집안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덕분에 그녀가 어려워하는 일을 한 번에 해결해 낼 때면, 칭찬을 듣곤 했다. 다만, 그녀는 내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대학 때까지 장인장모님 밑에서 곱게 생활했으니 그럴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 2020. 3. 19.
[옥탑글방_단편] #2. Missing "저기 미선.. 아니 진아 씨.. 이 것 좀 복사해다 줄래요?" 이번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을 불러 회의 준비를 부탁했다. "네? 네. 그럴게요. 몇 부나 해야 되나요?" "아.. 음.. 8명이니까 10부만 부탁해요. 나 잠깐 나 갔다 와야 되니까 회의실 세팅까지 좀 해주겠어요?" "네. 팀장님 다녀오세요... 팀장님.. 그런데 저는.." 그녀는 할 말이 있는 듯, 내 책상 앞에 서 잠시 망설이며 서 있었다. "아.. 아니에요. 다녀오세요." "왜요? 진아 씨. 무슨 할 말 있어요? 그냥 얘기해 봐요." "아니에요 팀장님. 급한 일 아니세요? 별일 아니니까 어서 가 보세요." 쌍꺼풀이 짙은 커다란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그녀는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으면 꼭 .. 2020. 2. 22.
[옥탑글방_단편] #1. 전초전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 수십 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두 시간의 짧은 결혼서약을 통해 부부가 되었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여전히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낮에는 양가 부모님과 친지 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저녁엔 각 자의 친구들과 결혼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전파하기 바빴다. 친구들은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다며 핀잔을 줬다. 그 사랑 얼마나 가는지 보자며 으름장을 놓는 친구놈도 있었지만, 하찮은 경험으로 판단 될 만큼 약한 사랑이었다면 결혼식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 호언장담.. 2020.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