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시계를 확인하고, 쫓기듯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주차장으로 달려가 시동을 건다. 즐겨 듣는 라디오에선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밝고 경쾌한 팝송이다. DJ의 오프닝 멘트가 끝났다면 지각할 확률이 높다. 서울의 도로는 3~4분만 늦어져도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기 때문에 아침의 1분은 1시간과 같다. 특히나 아침 7시와 7시 5분의 차이는 도착시간에 있어 30분 이상의 심각한 차이를 보이는 터라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서둘러야 했다. 집 앞 신호등만 받쳐 준다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었다. "Thunder, feel the thunder~. lightning and the thunder~" 노래 가삿말처럼 천둥보다 빠른 움직임이 필요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8시 25분. 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평소보다 5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꽉 막힌 도로에서도 분명히 흐름이 있었다. 오늘은 그 흐름을 잘 탄 모양이다. 서울에 올라온지 반년, 이제 서서히 서울생활이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밀려오는 안도감을 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달래며 담배를 챙겨 휴게실로 향한다.
'오늘이 몇일이지?' 힘겹게 날짜를 생각해내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하루의 스케줄. 속속 도착하는 동료들과의 인사와 잡담도 잠시, 나는 거대한 빌딩 속 톱니바퀴가 되어 일과를 시작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연속이다. 어제는 독사 같은 부장의 GR에 숨이 막히고, 오늘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후배 놈의 은근한 객기를 견딘다. 내일은 인턴이, 모레는 사장이 괴롭힐 것이다. 총무과 선배는 누군가의 GR을 견뎌내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것이라던데, 사장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놈들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책상에 앉자 마자 컴퓨터가 말썽이다. 이 놈의 컴퓨터는 언제 바꿔 줄 것인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김주임은 알았다는 말만 백번째다.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뛰어난 적응력 때문이라는데, 김주임의 두꺼운 쌍꺼풀은 두 달이 지나도 적응이 안된다. 본인은 속눈썹이 눈을 찔러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는데, 노총각 딱지 떼보겠다고 애쓴다는 소문이 더 솔깃하다. 문제는 눈이 아닌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것 같다.
한 바탕 폭풍같은 오전을 견디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결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점심 메뉴를 선택 할 시간.
며칠 전 부터 정확히 췌장에서 먹고 싶다고 아우성인 갈치조림을 고집해 보지만, 정 과장의 속 쓰린 위장에 밀려 갈비탕 국물로 뱃속을 채운다. 지가 먹고 싶으면 계산도 지가 하면 될 것을, 나눠먹은 공깃밥은 언제나 계산하는 내 몫이다. 정 과장도 최대리도 김주임도 만 원짜리 한 장만 낸다. 당장 9천 원짜리 식당을 찾아봐야겠다.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는 모두 좀비가 된다. 정과장의 큰 몸이 모니터에 가려지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이 부장 밑에서 3년이면 이쑤시개로도 몸을 가릴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점점 사실로 믿고 있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엉덩이를 앞으로 걸터앉아 허리를 펴고, 한 손으로는 턱을 받친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하고 정 과장을 따라 잠시 무단외출을 시도한다. 걸리면 막내가 빠졌다느니, 요즘 젊은것들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꼰대들의 잔소리를 견뎌야 하겠지만, 야근수당도 주지 않는 이 회사에서 이 정도는 월급에 포함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최악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께 전화예절을 배운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분명 "회사에 취직하거든 오후 한 시부터 삼십 분까지는 절대 거래처에 전화하지 말아라!"는 가르침을 주셨었다. 힘든 세상 다 위하고 사는 것이라며,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크게 된다는 가르침도 잊지 않으셨다. 그런데, 세상 살기 힘든 직장인끼리 동병상련의 정을 나눠도 시원찮을 판에 피해를 끼치는 이 전화는 누구일까? 분명 실업계 초등학교를 나온 것이 분명했다.
전화예절 중에 또 한 가지는 과장의 단잠을 깨우는 것은 태초에 헌법이 제정된 이래 범법행위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회의사당 지하 1층 서고에 놓여있는 전태일열사의 동상에 새겨져 있다는 소문이 있다. 여의도를 가보지 못해서 확인은 못해봤지만, 이런 하찮은 일로 범죄자가 되는 것은 별로라 벨소리가 한번 다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를 낚아채었다. 다행히 정 과장의 어깨가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쪼개버리고 싶은 머리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수화기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김주임이 감사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수화기 너머의 정체를 확인하기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총무과 최지오 입니다."
"......."
수화기 넘어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례 '안녕하세요~ 고객님~'이라는 상투적이고 애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와야 정상인데, 수화기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다시 한번 수화기 넘어의 존재에게 정체를 밝히라며 다그쳤다.
'......스르릉....'
여전히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니 어떤 소리가 작게나마 흘러나오고 있었다.
".... 스르릉... 스르릉... 스르릉..."
뭐지? 나는 점점 더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르륵 스르릉 스르릉 스르릉 스르릉"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돌아가고 있었다. 옛날 놀이터의 오래된 뺑뺑이를 돌릴 때 베어링 소리 같았다.
"여보세요?"
다시 한번 수화기 속 누군가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짜증을 섞어 채근해 보았지만, 여보세요 만 외치는 나에게 주변의 따가운 시선만이 날아왔다. '말 없으면 얼른 끊어!'라는 동료들의 눈빛들. 회사에 들어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말을 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입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빛.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라는 우스겟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사람은 눈에서 빛을 내뿜곤 했다. 아마 나도 가끔은 뿜어내는 모양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프레젠테이션 할 때가 주로 눈 빛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분명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 과장은 눈빛으로 지시를 했다. '빨리 넘겨. 아니야. 거기선 더 설명을 좀 해. 자세하게 말이야. 예도 좀 들고. 최지오. 오늘 컨디션 별로야?'와 같은 이야기들을 옆에서 말로 하는 것처럼 또렸이 전달하였고, 신기하게도 나는 그것을 또 알아들었다.
분명 내 입은 PT 내용을 전달하기에 바빴지만 내 눈은 과장과 이야기했다. 동료들이 나에게 끊으라고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눈으로 짧게 '알겠다.' 대답하고는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제야 동료들은 레이저를 거둬들이며 과장의 동태를 한번 힐끔거리고는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갔다.
어릴 적 어머니를 졸라 작은 플라스틱 상자 속 다람쥐를 키운 적이 있었다. 바닥에는 톱밥을 깔고 이빨 빠진 사기 접시로 밥그릇을 만들고 철로 된 쳇바퀴도 한쪽에 설치해 주었다. 독립성이 강해 두 마리가 한 곳에 있을 경우 싸움이 잦다고 하여 한 마리만 키웠다. 이름도 다리미(다람쥐-> 다라지-> 다리지->다리미)라고 지어주며 나름 극진히 돌봐줬었다.
똥을 아무 데나 싸서 이삼일에 한 번씩은 신문지를 갈아주어야 했고, '맛있는 먹이를 구해 주겠다'며 도토리를 찾아 뒷산을 헤매다 뱀을 밟기도 했었다. 그렇게 도토리를 한 움큼 구해다 먹이통에 잔뜩 올려놓고 나면 다리미는 쳇바퀴에 올라가 신나게 뜀박질을 시작했었다. 아마도 누가 구해다 준 먹이를 그냥 먹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스스로 땀 흘려 구하지 않은 먹이는 먹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다리미는 늘 도토리를 가져다 놓을 때면 쳇바퀴를 먼저 뛰었다.
다리미가 쳇바퀴에 올라 발을 구르기 시작하면 쳇바퀴는 금세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다리미의 발동작에 맞추어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여주면 다리미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바퀴를 최고속도에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빠르게 돌던 쳇바퀴는 "스르릉 스르릉" 소리를 내며, 다리미가 힘겹게 올려놓은 속도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이때부터가 진짜였다. 다리미의 표정이 분명 "스르릉"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조금씩 비장해지고 있었다. 수염은 조금씩 하늘을 향해 치켜올려 세워졌고, 디딤판을 밟는 발의 근육은 조금씩 꿈틀거리며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몸통의 털도 덩달아 세워졌고 표정은 비장함을 넘어 사선을 넘나드는 사신의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동안 다리미는 스르릉 거리는 쳇바퀴와 혼자만의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런 다리미를 지켜보며 나는 온 힘을 다해 다리미를 응원했었다. "오늘은 이겨야 돼. 다리마! 뛰어! 달리란 말이야!" 두 주먹을 불끈 지고 큰 소리로 달려 달려를 외쳐댔었다. 하지만, 내 응원과 상관없이 잠깐의 전투는 언제나 스르릉 거리는 소리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다리미는 몇 번의 힘찬 발길질을 마치고는 쳇바퀴의 차가운 기운에 질겁이나 한 듯이 이내 내가 놓아둔 먹이 앞으로 폴짝 내려와 도토리를 두 손에 공손히 들고는 구석으로 달려가 한참을 뒹굴뒹굴거렸다. 그런 다리미를 보고 있자면 나조차도 다리에 힘이 풀려 한참이나 도토리와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가을이 지나 찬서리가 내리던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도토리를 줍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이 맘 때의 산은 도토리를 잘 내어주지 않았다. 낙엽들을 발로 뒤적이다 보면 몇 개의 빈 껍질만을 발견할 뿐, 속이 꽉 찬 도토리들은 하루에 1~2개를 주울까 말까였다. 공치는 날도 수두룩해서 다리미는 벌써 몇 주째 쳇바퀴에서 비장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런 다리미가 왠지 힘이 없어 보여 오늘은 좀 더 높은 곳까지 올라 도토리를 구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산을 올랐다.
어린 나이에 산을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20분은 더 올랐지만, 내 숨은 여전히 평온했다. 어쩌면 나는 '도토리보다 더 빨리 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젖은 낙엽들 사이로 도토리가 보였다. 한두 알이 아닌 여나무 알 정도가 말이다. '역시! 나는 복 받았어.'라고 생각하며 얼른 주워 나뭇잎들을 털어내곤 호주머니에 넣었다.
작은 호주머니 속이 도토리로 꽉 차고 나니, 내 마음도 뿌듯함으로 꽉 채워졌다. '조금만 기다려. 다리미야. 오늘은 실컷 뛸 수 있게 해 줄게.' 올라간 시간의 채 반도 지나지 않아 산을 내려왔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오다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쓸려 빨간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 씨..' 무릎이 엄청 쓰라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절뚝거리며 집으로 들어섰다.
어머네가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던 나를 보며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자 속 다리미는 도토리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구석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 니가 제일 좋아하는 도토리다. 어서 먹어봐. 형아가 어렵게 구해 온 거야." 라며 다리미를 채근해 보았지만,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내 뒤따라 오신 어머니에게 손을 잡혀 밖으로 끌려가 약을 바르던 그때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미만 생각했다. '유별나다.' 시며 엉덩이를 수차례 때리시고야 무릎에 약을 발라주시는 어머니께 나는 '엄마. 다리미가 이상해요.'라고 말해 보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 '그놈의 다리미를 확 갖다 버리던가 해야지.'라고 짧게 얘기하시고는 피가 나는 무릎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이것저것 바르시며 '하이고 흉 지겠네 흉 지겠어' 라며 혼잣말만 하실 뿐, 다리미는 안중에도 없으셨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다리미가 도토리를 가지고 있길 바라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상자 속 다리미는 여전히 구석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좀 움직여봐 다리미야. 바퀴는 안 굴려도 돼. 네가 좋아하는 도토리잖아. 그냥 이거라도 좀 먹어라. 응?" 이라며 도토리를 들어 코앞에다 들이밀었지만, 다리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겨울잠이라도 자는 건가?' 아침에 내린 서리 탓에 다리미의 본능이 춥다고 활동을 정지시킨 것일까? 겨울이 되면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건가? 그때의 나는다람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미가 도토리를 먹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툭툭 건드려도 보았지만 여전히 미동도 않는 다리미였기에 오직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동물병원이라도 많았다면 당장 어머니께 맞아 죽길 각오하고서라도 병원에 가자고 때를 써댔었겠지만, 그때는 사람도 병원에 가기 힘든 때였기에 동물 병원은 나의 머릿속 어디에도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았다.
그저 기다림.
나와 다리미가 있는 방안에는 오직 침묵과 기다림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스르륵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었나 보다. 하지만 다리미는 그대로였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잔뜩 움츠린 채로 미동도 않고 있었다. '어? 소리가 들렸는데..?' 분명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꿈을 꾼 건가?' 이상했지만, 쳇바퀴도 다리미도 도토리도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잘 못 들었나 보다.' 라며 상자에 가까이 가 다리미를 밖에서 툭툭 두드려보았다. 여전히 미동도 않는 침묵. '어?' 아까랑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눈을 뜨고 있던 다리미의 눈이 감겨 있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 다리미야? 다리미야?' 나는 얼른 다리미를 꺼내어 책상에 놓고는 이리저리 때려보고 건드려보았지만, 이미 다리미는 잔뜩 웅크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어른이 되기 얼마 전, 꿈에서 다리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날 나는 도토리를 찾아 여전히 산을 오르고 있었고, 커다란 나무뿌리 근처에서 도토리를 먹고 있는 다리미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리마~' 하고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다리미는 내 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한걸음에 달려가 따듯하게 않아주고 싶었다.
빠르게 달려가자 인기척을 눈치챈 다리미는 이내 도토리를 버려놓고 나무 위로 올라가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다리미를 목 놓아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새소리 나 풀벌레 소리뿐, 어떤 기척도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서성이며 다리미를 찾아 헤맸지만 빈손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다리미가 버리고 간 도토리를 집어 들었다.
'다리미는 내가 가져다주는 도토리를 좋아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토리를 가져다 주기보다는 숲 속으로 보내줬어야 했었나 말이다. 지금처럼 나를 떠나 모습을 감추었지만, 여기 숲속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살아갔을 테니 말이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어렸었잖아.'라며 자위를 했지만 아쉬움은 쉽사리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먼 훗날 같은 상황이 오면 나는 당연히 숲 속에 풀어주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그게 다람쥐가 아니라 어떤 것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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