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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단편소설

단편) #7. 부업(조과장의 연봉 협상 날)

by 바꿔33 2020. 4. 11.

 석 달 동안이나 팀원들과 밤낮없이 매달린 프로젝트가 오늘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어제 임원진 회의에 다녀온 부장님은 오늘 계약이 성사되지 못하면 우리 모두 짐 싸야 한다며 아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새벽부터 바이어들의 세세한 기호에 맞춰 프레젠테이션부터 음료 취향까지 모두 세팅했던 김대리 덕분에 3시간이 넘는 긴 회의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며 결국 우리는 싸인을 받아내고 말았습니다. 

 

 

 현관 앞에 대기중이던 바이어들의 차량이 출발하고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우리 여섯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그 간의 노고와 기쁨을 서로 얼싸 않고 나누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장님은 법인카드를 들고와 전체 회식으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1차부터 3차까지 즐거움이 가득했던 회식이 끝나고 부장님과 단 둘이 남았습니다. 부장님은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며 근처 치킨집에 들러 아이들 먹이라며 치킨을 두 마리나 포장해서 내 손에 건넵니다. 뭘 이런 걸 주시냐며 손사래를 쳐 보지만, 오늘 우리팀이 만들어낸 매출에 비하면 너무 약소한 보상이니 오히려 미안하다며 극구 손에 쥐어줍니다. 다음번 연봉협상 때 기대해 보자며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곤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몇 달 후 연봉협상의 날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팀원들은 지난 프로젝트가 얼마의 가치가 있으니 최소한 얼마 정도는 올라야 된다는 예상치를 남발하며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팀원들의 얘기를 들으며 김칫국 마시고 배탈이나 나지 말라고 핀잔을 주던 나조차도 올해는 팀원들 만큼은 아니지만 기대를 조금은 했습니다. 

 

 얼마전 옆집 아이와 아들놈을 비교하며 학원을 한 개만 더 보내면 좋겠다고 투덜 되던 아내에게 그런 거 안 해도 똑똑한데 뭘 그렇게 유난을 떠냐며 핀잔을 줬던 터라 오늘 결과가 나오면 집에 가서 큰 소리 좀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슬쩍 번지기도 했습니다. 평소 유난히 말이 없던 정대리도 오늘만은 분위기를 어쩔 수 없었는지 사무실 중간 테이블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거들고 있습니다. 

 

 이 주임이 다가와 회사 앞 정식집도 예약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평소 예약하기 힘든 집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자리가 있다며 운이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 붙였습니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막상 연봉협상장에 들어가면 왠지 주눅이 들기 때문에 진기를 다 빨렸을 부장님이 좋아하시는 메뉴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연봉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10%~30%까지도 인상 폭을 봤던 팀원들은 아까부터 자리를 비우곤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점심은 나가서 먹겠다던 부장님도 깜깜무소식입니다. 사무실을 비울 수가 없어 혼자 자리를 앉아 책상 앞을 지키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옆 팀의 김 과장이 다가와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넬 때도 말할 힘도 없어 그냥 가라고 손 짓만 했습니다. 

 

 지나가던 최이사가 잠깐 우리 팀 앞에서 멈춰 선 듯 보였지만 잠깐 동안 바라봤을 뿐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 모습에 잠겨있던 컴퓨터를 풀고 한글 파일을 열었습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는 또박또박 세 글자를 쳤습니다. 

 

사직서.

 

 막상 쳐 놓고 나니 어떻게 시작해야 될 지 몰라 녹색창에 사직서 양식이라고 검색하고는 이곳저곳 한 참을 둘러보다 스치듯 어떤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치킨집은 몇 평이 적당한가요? 어떤 치킨집이 좋을까요?

 

 글귀가 눈에 들어온 순간 번쩍 하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 대로 나가면 어떻게 해야하지?해야 하지? 와이프한테는 뭐라고 하지? 당장 다음 달엔 어떻게 해야 하지?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았나? 보험료는 잘 나가고 있는 건가? 집 값이 좀 떨어졌다던데 전셋값은 이제 안 오르는 건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물고 옥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층에도 흡연실이 있지만, 좁디 좁은 그곳에 들어가면 오히려 숨이 더 막힐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없어졌던 팀원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아직은 바람이 차서 오래 있기엔 좀 추웠을텐데, 것 옷도 걸치지 않은 팀원들은 모두 괜찮아 보였습니다. 

 

"다들 여기서 뭐해? 춥지 않아?"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팀원들이 일어나며 대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막 들러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아냐. 괜찮아. 이렇게 나오니 상쾌하니 좋네."

 

 

 분위기를 바꾸려 화재를 돌리는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본 최대리가 다가와 라이터를 건넵니다. 라이터를 받아 들고 담배에 불을 붙이곤 한 모금 깊게 빨아드립니다. 까슬까슬한 담배연기가 폐 속 깊이 들어가 고민거리들을 다 가지고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가만히 땅만 쳐다보고 있던 김대리가 한 마디를 합니다. 

 

"대리 운전 같은 부업이라도 해야겠어요. 와이프가 엄청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일에 매달린 탓에 와이프한테 엄청 찍혔었는데, 오늘은 김대리를 포함한 팀원 모두들 집에서 고개를 못 들 것 같습니다. 아마 한 동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깟 회사 때려치워!"라고 말 못 하는 아내도, "내가 이깟 회사 더러워서 때려치운다!"라고 말 못 하는 우리도 모두 한 동안 괴로울 것 같습니다. 서로의 맘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지요. 

 

김대리 말처럼 정말 부업이라도 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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