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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장편 & 시나리오

소설) 원더랜드 2화

by 바꿔33 2020. 4. 11.

2.

 휴대폰 알람소리가 울리자 며느리는 곤히 잠든 아이들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남편과 아이들은 가로로 세로로 서로 뒹엉켜 자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이불을 끌어다 아이들을 덮어주고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창밖은 환희 밝아져 있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 연희는 차가운 냉기에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11월 밖에 안됐는데, 거실이 이렇게나 차갑나? 내일 새벽엔 보일러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마주보이는 어머님 방문이 굳게 닫힌 것을 확인한 연희는 잠시 멈춰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했지만 이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들어선 연희는 쌀을 씻어 밥솥에 앉혔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흑미를 조금 섞었다. 아이들이 까만색밥은 무섭다며 먹질 않는 통에 평소엔 잘 넣지 않았지만 오늘은 조금이라도 어머님 기분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어젯 밤, 남편은 늦게까지 어머님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퇴근 후 9시넘어 어머님 방에 들어가 12시가 넘도록 나오질 않았다. 1시간 쯤 지났을 때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선 연희에게 남편은 그냥 나가라고 손짓을 했었다. 어머님은 남편에게서 돌아 앉아 꼼짝을 안하고 듣기만 하고 계셨었다. 평소라면 큰 소리가 나도 벌써 났을텐데, 어제는 끝내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은채 남편이 물러났다. 남편이 나오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연희를 남편이 말렸다. 오늘은 그냥 쉬게 해드리는게 좋겠다며 연희를 돌려세웠다. 어머님께 물만 드리고 오겠다며 떼를 썼지만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연희의 팔을 잡아 안방으로 끌었다. 

 "아까 드린 것도 그냥 있어." 

 남편은 침대에 누워 한 참을 뒤척였다. 침대 끝에 걸터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희에게 남편은 괜찮을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문 밖에서 희미하게 어머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화장실로 향하는 듯 했다. 잠시 후 변기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주방으로 향한 발소리는 쟁반을 내려 놓고 방으로 멀어졌다. 쿵. 하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남편과 연희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어머님이 충격을 받거나 하시진 않으신거 맞죠?"

 "응. 일단은. 지난 주에 미리 말씀 드려서 예상은 하고 계셨었나봐. 물론 본인 생각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어쩌겠어.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차츰 나아지시겠지."

 "제발 그래야 될 텐데요."

 그제서야 남편은 침대에 돌아누우며 잠든 현욱이를 끌어 안았다.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남편은 연희보다도 신경을 더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욱이는 잠깐 뒤척이긴 했지만 이내 얌전해졌다. 그런 둘을 연희는 침대 맡에 걸터 앉아 내려다 보았다. 

 문득 연희는 현욱이가 자신한테 이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렇게 두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 '그런데 남편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연희는 새차게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저기 저렇게 버젓이 누워있고, 현욱이는 아직 어린애일 뿐이다. 괜히 어머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님이 힘드신 건 알겠는데, 어떤 마음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냥 어머님 말씀대로 우리끼리 가야 하는 것이 맞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잘 해드리면 되지 뭐.' 

 이미 끝난 이야기를 계속 생각해봐야 좋을게 없다는 것을 연희는 잘 알았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자 특기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 어머님께도 칭찬을 들었었다. 침대 끝에서 가만히 문밖에 소리에 집중하던 그녀는 더이상 아무소리도 안 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누워서도 한 동안 문밖의 소리에 집중해 보았지만 더이상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희미하게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래 강한 분이니까 잘 이겨내실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지며 하루종일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남편의 크지 않은 코고는 소리와 현욱이의 숨소리, 바로 옆에 잠이 든 현희의 숨소리도 들렸다. 잠든 현희를 끌어 안 자, 몸이 노곤해 지며 곧 깊은 잠에 빠져 들었었다. 

 

 밥 솥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연희의 바짓자락을 누가 잡아 끌었다. 깜짝 놀란 연희가 아래를 바라보자, 졸린 눈을 비비며 이제 막 일어난 현희가 바짓자락을 잡고 서 있었다. 

 "엄마~. 할머니 어디갔어?"

 "응?! 우리 딸 일어났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 계시지. 어제 늦게 주무셔서 피곤하실 거야. 오늘은 깨우지 말고 더 주무시게 해 드리자. 알았지?"

 연희는 눈을 비비는 현희를 번쩍 들어 안으며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했다. 현희는 그런 엄마품에 꼭 안기며 조용히 얘기했다. 

 "할머니, 할머니 어디갔어? 할머니 방에 없어."

 "할머니 방에 안 계셔? 할머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에 계셨는데?"

 연희는 현희를 안고 주방에서 나와 어머님 방쪽을 쳐다 보았다. 현희가 열어 놓은 방문 사이로 어머님의 방 안쪽이 보였다. 그곳에 어머님은 안 계셨다. 

 "할머니, 화장실 가셨나?"

 연희는 화장실 문 앞에서서 인기척을 느껴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문에 노크하며, "어머님. 어머님 안에 계세요?"라고 불러 보았지만,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연희는 현희를 내려 놓고, 어머님 방으로 향했다. 어머님 방에는 이불이 깔려 있지 않았다. 

 '벌써 일어 나신건가? 그럼 새벽에 어딜 가신거지?'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혹시...?' 하는 생각에 장농 옆을 확인해 보았다. 엇 그제 찾아드린 가방이 없었다. 그 가방은 어머님이 여행 가실때만 쓰시는 커다란 여행가방인데, 며칠 전 가방이 안보인다고 하셔서 연희가 꺼내드렸었다. 가방을 꺼내며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었지만, 어머님은 '가긴 어딜가. 그냥 안보여서 찾은 것 뿐'이라고 짧게 얘기하셔서 연희는 더이상 묻지 못했다. 최대한 어머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좀 더 여쭤 봤어야 하는데..' 연희는 성급했던 자신을 탓했다. 어머님은 그 때 뭔가 계획을 세우신 것 같았다.  연희는 황급히 안방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여보~! 여보~!"

 사색이 되어 뛰어가는 연희를 보며, 뒤를 졸 졸 쫓아 다니던 현희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앙~ 할머니~~!!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