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일이 밝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1시간 거리의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집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주말에 힘을 다 써버린 탓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불과 몇 달전만해도 키즈카페나 롤러장, 극장이나 어린이 박물관과 같은 실내시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추웠던 탓도 있지만, 전문시설의 아이들 전용 프로그램 힘을 빌리기 위해서이다. 주5일 힘겹게 일하느라 지쳐버린 몸뚱이로는 아이들의 무한체력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실내의 모든 활동이 금지된 요즘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실내활동 뿐만 아니라 야외활동도 부담스럽지만, 1주일 내내 집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을 주말에도 집안에 두기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래서 토요일은 가까운 공원으로, 일요일은 구석에 쌓아 놓은 장난감을 꺼내 시간을 보냈다.
공원에서는 술래잡기가, 장난감 중에선 아이클레이(점토놀이, 옛날 찰흙과 비슷하다.)로 동물만들기가 인기가 높다. 요즘들어 유난히 때쓰기가 늘어난 막내녀석을 달래려 부족한 에너지를 짜냈더니 그 여파가 월요일 아침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차를 타기 전 기지개를 힘껏 펴고 운전석에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찌뿌등한 컨디션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주말동안 웃어준 녀석들의 다양한 표정이 기억속에 남아 에너지가 되어주기 때문이겠지.
많이 따듯해진 아침공기가 꽤 상쾌하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니 상쾌함은 배가되고 컨디션도 좋아지는 듯하다. 이른 아침 쭉쭉 빠져주는 교통상황도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든다.
그렇게 삼심분 쯤 달려 시 경계를 넘어 회사가 있는 도시로 진입했다. 상쾌한 바람과 시원하게 뚫린 도로 상황에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5분 쯤 지났을까?
"삐이~ 삐익~ 삐익~" 하는 경보메세지가 울린다. 신경을 긁는 경보소리에 걱정이 앞선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낸 메세지.
[사회적 거리두기 직장인 행동지침. 유증상시 재택근무, 직장내 2m 거리두기, 마주보지 않고 식사, 다중이용공간 사용않기, 퇴근후 바로 귀가하기]
[가족과 동료를 지키는 2주간의 멈춤에 동참해주세요! 한 분 한 분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안전을 지켜 달라는 권고메세지에 그나마 다행이라 한숨을 돌린다. 꿉꿉한 마음을 달래려 라디오를 틀었다. 아침 뉴스에도 온통 코로나 관련 뉴스 뿐이다. 혹시나 새로운 뉴스가 있을까 귀 기울여 보지만, 늦은 밤까지 확인했던 터라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러다 또다시 "삐삐~ "
십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경보메세지가 울린다.
[OO시청] 35번째 확진자 발생 (00세/여,...)
하필 회사 근처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상쾌했던 아침은 또다시 근심과 공포로 물들기 시작한다. 괜히 턱밑에 걸쳐 있던 마스크를 끓어올려 쓰고는 코끝을 눌러 조금 떠 있던 공간까지 틀어막는다. 그러다 차 안에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시 턱 밑으로 내려 보낸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나와는 다르게 모두가 평안해 보인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흡연실로 향한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 귀울이니, 저마다 인상깊었던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마치 분량 많은 중간고사 시험범위에서 파트를 나누어 공부를 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같다.
국내와 대구의 상황, 특히 경기와 서울이 조금 이상하다. 국제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 중 일본과 유럽이 탑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국가가 망한다더라. 아는 지인이 미국에 있는데, 미국도 심각하다더라... 등등...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모두가 씁쓸할 뿐이다. 누구도 해결방법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어라 라는 기본적인 내용은 이제 언급조차 되지 못한다. 해법이 없는 공포. 절대적인 무력감. 이런 감정을 맘편히 드러낼 수도 없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공포는 실체를 갖추어 더욱 커다란 크기로 자라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 모금의 담배와 한 모금의 커피로 불안감을 잠재우며 하나 둘 흡연실을 떠난다. 비벼 끈 담배꽁초처럼 코로나도 그만 비벼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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