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에쎄이

에세이) #13. 주말엔 좀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바꿔33 2020. 3. 25. 16:34

비오는 날 종이배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된 요즘, 아이가 있는 집의 주말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안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의 짜증은 목요일에 최고조에 달한다. 마치 김빼기 직전의 압력밥솥처럼 아이들의 행동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밥솥 안에 가득찬 증기를 감당못한 아이들은 작게 삐집어진 틈사이로 연신 증기를 뱉어내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금요일 특유의 안도감이 없었다면 분명 요란하게 폭발했을 터였다. 때문에 우리부부는 주중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도 전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중이다.

지난 금요일에도 아이들은 현관문에 들어선 나에게 쪼로록 달려와, 내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커다란 질문을 날렸다.

"아빠. 내일은 우리 어디가요? 네?"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귀여운 표정을 무기로 가진 셋째의 공격에 간신히 부여잡고 왔던 이성의 끈이 끊겨 버렸다.

"아빠도 잘 몰라. 내일은 집에서 쉴 까?"

귀찮은 듯 밀어내는 나에게, 셋째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 협박한다.

"아~! 아~! 몰라! 아빠 미워! 집안에서는 재미 없단 말이야!"

자리에 철퍼덕 주저 앉아 떼를 쓰는 막내를 피해 안방으로 숨어 들었다. 혹시모를 병균이 찝찝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한 결 가벼워진 옷 덕분인지 덩달아 마음도 가볍다. 거실로 나가니 아직 분이 덜 풀린 막내가 쪼로록 달려온다.

"그래. 가자. 가! 내일은 공원에 가서 움직여보자."

햇살은 이미 봄이다.


이른 아침 마스크와 비닐장갑까지 꼼꼼히 챙긴 우리가족은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찾는다. 날씨도 좋아서 상쾌함은 배가 된다. 꽤 서둘러 출발했는데 공원은 이미 만석이다. 중앙재난본부의 지침에 따라 사회적거리 2m를 유지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탁트인 바다나 공원 밖에 없을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사람이 적었다면 마스크를 벗고 상쾌한 봄공기를 마음껏 흡입하고 싶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이미 들뜬 아이들은 공원안 놀이터를 향해 벌써 저만치 뛰어가고 있다. 힘겹게 따라 붙어 마스크와 장갑을 벗지 못하게 단단히 교육하고 나서야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다.

잠시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놀이터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를 오른다. 등산로 초입에 있어 몇 계단만 오르면 벤치가 있다. 50m도 안되는 짧은 거리지만 높이가 있어 시원한 개방감과 따듯한 햇살을 느끼기엔 제격이다.

간혹 오르내리는 등산객의 얼굴에도 마스크는 필수이다.

"마스크 업체 때돈 벌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조금은 각광 받았던 마스크지만 사람들의 귀차니즘의 벽에 막혀 조금씩 잊혀져 가던 하찮은 물건이 금값보다 비싼 존재가 될 지 누가 알았을까.

나는 매일 자라고 있다.


그 때 "카 똑~!" 하며 메시지가 울린다. 와이프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찍어 보냈나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회사 대리님의 업무메세지이다. 금요일 시간이 안 맞아 월요일로 미뤄진 협력사의 오더를 토요일 오전에 혼자 처리하고 올린 것이다.

짜증이 났다.

"왜 토요일 오전에 이런 메세지를 보내는 것일까?"

본인이 일을 했으면 얼른 끝내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굳이 토요일 오전에 그 사실을 카톡방에 띄우는 심리가 이해 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짜증을 그대로 섞어 답글을 작성했다. 기본적인 매너가 없다고 한 마디 시원하게 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회사 막내인 내가 이런 글을 올리면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힘들어 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성을 찾았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6명이 정원인 카톡방에 2로 줄어든 숫자가 신경쓰인다. "수고하셨다"는 침바른 소리라도 던져야 한는지 고민이 되지만 낮은 서열은 이번에도 발목이 잡힌다. No.1~4의 반응을 지켜보며 침묵으로 소심한 시위를 결정한다.

한 참이나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다. 골든벨 문제에 정답을 맞춘 기분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봄바람이나 찍어볼까 하고 카메라를 켠다. 그 때 또다시 카톡이 울린다.

"수고 했어요. 아이고 주말에도 고생하시네."

No.4인 과장님의 격려 메시지. 순간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급하게 쳐 넣었다. 기분이 상하지만 이 또한 회사생활이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엔터를 치면 이제 나는 씁쓸한 짜증을 혼자서 겪어 내야만 한다. 분명 업무외시간의 카톡은 업무의 연장이라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것으로 아는데, 아직 우리회사까지는 전파가 안된모양이었다. 어쩌면 야근을 장려하고 인정하는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씁쓸한 마음을 다 잡으며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또다시 까톡이 울린다.


[업무시간 이외 일하지 맙시다.
프랑스에선 업무시간외 sns도 불법령이 내렸어요. 벌금형도 전과니까요. 고생한건 인정하지만...]


No.3의 메시지.

평소 말이 없는 No.3가 이렇게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멋진 분인 줄 알았다면 회식때 소주잔이라도 가득 채워드릴껄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놀이터에 내려가니 흩어져 놀던 아이들이 두 팔을 벌리며 뛰어온다. 나는 양팔을 벌려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고, 신나는 술래잡기를 이어간다. 나의 역할은 괴물이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괴물. 문득 세상엔 이런 괴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