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단편소설

옥탑글방_단편) #1-2. 설거지

바꿔33 2020. 3. 19. 06:43

 싱크대에 담겨 있는 그릇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제저녁은 그녀가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던 참치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오이무침이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밑반찬을 통에 담긴 채로 꺼내 먹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접시에 조금씩 담아내었기 때문에 그릇이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정도 양이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오랜 자취생활을 했던 터라, 집안일에는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설거지, 세탁, 청소, 음식까지. 나는 집안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덕분에 그녀가 어려워하는 일을 한 번에 해결해 낼 때면, 칭찬을 듣곤 했다. 다만, 그녀는 내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대학 때까지 장인장모님 밑에서 곱게 생활했으니 그럴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간단한 지식들도 그녀는 감탄하며 대단하다고 나를 치켜세워주곤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나를 감동시켰다. 얼굴도 이쁘고 마음까지 예쁘다니. 이런 그녀에게 어찌 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처음 본 순간 그녀를 알아보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수세미를 꺼내어 적당량의 세재를 묻혀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에 충분히 불린 터라, 그릇에 묻어 있는 음식과 양념들은 가벼운 초벌 헹굼 만으로도 쉽게 지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붙어 있는 나머지 잔여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세미로 꼼꼼하게 설거지를 한다. 거지를 할 때에는 먼저 제일 큰 그릇부터 세제로 닦아 두는 편이 좋다. 그래야만 모든 그릇들을 안정감 있게 쌓을 수가 있을뿐더러, 물 사용량도 조금은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들 아는 내용이었지만, 이부분에서도 그녀는 조금 서툴렀다. 늘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릇들을 씻어 나갔고, 조금 후에는 여지없이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게나 쌓아 놓았던 그릇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몇 번 해 보면 분명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쌓이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좀처럼 그녀는 똑같은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얘기해 줄까 하다가도 괜히 열심히 하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그냥 두고 보고 있는 중이다. 뭐 아직까지는 그릇이 깨지거나,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또 하나의 팁을 말하자면, 물은 사용할 때만 틀어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물을 틀 때도 수도꼭지를 100% 열지 말고, 한 50%만 열고 사용하면 물 사용량을 엄청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설거지할 때 싱크대가 온통 홍수가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물이 훨씬 덜 튄다. 조금만 신경쓰면 개수대 밖으로 거의 튀지 않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수도꼭지를 반만 열어 사용하는 센쓰를 꼭 발휘하도록 하자.

 

 


 싱크대 위에 가지런히 엄청난 밸런스를 유지하며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며 자뻑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작은 일들까지 꼼꼼하게 알고 있는 내가 조금은 기특하고 대견했다. 마치 석가탑이라도 쌓은 것처럼 뿌듯한 맘이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성격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드디어 깨끗하게 씻어낼 차례가 되었다. 설거지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세제로 잘 닦여진 그릇을 흐르는 물에 헹궈 낼 때의 뽀득뽀득함은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이 느낌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의 상쾌한 기분을 더욱 업! 시켜줄 일이다.

 수도꼭지는 반만 열었다. 쏴 아악~이 아닌 슈우욱 정도?! 부드럽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확인하곤, 설거지 그릇에 담겨있는 더러워진 물을 시원하게 비워 버렸다. 촤아악~ 하고 싱크대 안에 가득 찬 이 더러운 물이 빠지고 나면, 그릇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헹궈나가야 한다. 거품이 잔뜩 낀 그릇들을 다시 수도꼭지 아래에 위치시킨 후 첫 번째 그릇을 들어 헹구기 시작하였다. 

 

 "뽀득뽀득, 뽀득뽀득."

 역시나 이 느낌은 상쾌하다. 물줄기에 가져다 댄 그릇을 돌려가며 구석구석 손으로 문질러 뽀득거림을 느껴야 한다. 간혹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밥풀이나 기타 음식물 찌꺼기들이 딱딱하게 굳은채 딱 달라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찌그래기들은 손끝의 감촉으로 찾아내야 한다. 수세미가 아닌, 손톱으로 살살 긁어내면 금방 떨어진다. 고무장갑을 끼고 하기보다는 맨손으로 하는 것을 추천한다.

 

 첫 번째 그릇 클리어. 깨끗하게 잘 닦여진 그릇을 물 빠짐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두 번째 그릇을 집어 물줄기로 가지고 가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많이 틀지도 않았는데, 싱크대에 물이 빠지지 않고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이게 왜 이러지?'두번째 그릇을 내려놓고, 설거지 그릇을 들어 아래를 확인하였더니, 물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싱크대 속 거름망에 음식물로 가득 찬 모양이었다. 특별히 음식물 찌꺼기를 버린 적이 없는데, 물이 빠지질 않았다. 그렇다면 어제나 그 이전의 음식물 찌꺼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설마 나의 사랑하는 그녀가 뒷처리를 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싱크대 거름망을 확인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의 깔끔한 내 기분은 온통 시궁창이 되어버렸다.

 

 설거지의 그 뽀드득 거림의 느낌도 더 이상 전혀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만큼의 온갖 음식물 찌꺼기들이 거름망 속에 가득했다. 거름망 속의 음식물 찌꺼기들의 비주얼은 마치 술을 많이 먹은 그날의 내 위속 내용물이 그대로 꺼내진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거름망 속에 김치며, 밥풀이며, 야채 찌꺼기들과 고춧가루 등의 양념들이 한대 어우러진 채로 통 안을 가득 메운 그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 또한 정말이지, 이 거름망을 당장이라도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그녀는 왜 설거지 후에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았을까? 설거지는 그릇들만 닦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흔들어 깨워, 이 엄청난 비주얼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냥 지금 치워 버리면 그녀는 이 사실을 깨우칠 수 있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그녀지만, 지금 이 상황은 일부러라기보다는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거지를 마친 후에는 꼭 이 거름망 안의 음식물 찌꺼기들을 덜어 낸 후, 깨끗하게 세척까지 해야만이 진정한 설거지가 끝나는 것이다. 이 거름망 속 음식물을 이렇게 쌓다 보면, 물이 안 내려가는 것은 기본이요. 좀 오래될 경우에 이곳에서 구더기까지 자라나는 것을 나는 자취 시절 몸소 체험하여 알고 있다. 

 

 그 비주얼은 지금의 이것과는 비견도 안되며, 그 후로는 그 싱크대 자체를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이 얼마나 드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날 싱크대 구멍 속으로 부어 버린 락스가 몇 통이 었는지 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강한 락스를 몇 통씩 드러 붙고서도 왠지 어디선가 꿈틀거리는 그 벌레들의 형상이 계속 보이는 것만 같아서, 그 후론 매일 이 부분을 깨끗하게 청소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의 싱크대에서 과거의 엄청난 비주얼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판단이 서질 않았다. 거름망을 신속히 비워내고, 락스를 찾아 깨끗이 닦아 내었다. 일단, 그녀에게 알릴지 말지를 결정하기보다는 한시라도 빠르게 이 거름망을 깨끗하게 해서 벌레의 탄생을 막는 것이 훨씬 더 급한 일 이다. 락스까지 사용해서 깨끗하게 닦아 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안정되었다. 그녀는 설거지가 서투른 것 같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어쩌면 그릇만 닦아 내는 것도 그녀에게는 버거운 일일 수도 있다. 왠지 그녀만 믿고 집안일을 맡겨만 두었던 내 잘 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그녀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음식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곧잘 하고, 집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그녀를 믿고 집안일을 맡겨왔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보면 눈에 보이는 부분만 하는 1차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예상한 부분이 맞다면, 그녀에게 집안일에 대한 사소한 것 하나하나씩 가르쳐야 될지도 모른다. 운전도 부부끼리는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과연 집안일을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어느덧 쌓여 있던 그릇들이 모두 선반으로 옮겨져 있었다. 설거지 그릇(볼)을 깨끗이 닦은 후에, 싱크대 개수대와 수전까지도 세재로 깨끗이 닦아 내었다. 역시나, 여태 한 번도 닦지 않은 듯 눈에 보이지 않는 물때와 찌든 때들이 상당히 쌓여 있었다. 점점 그녀가 1차적인 수준에 머물러져 있다는 것에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찌든 때들을 깨끗이 닦아 낸 후, 싱크대 주변에 튀었던 물을 닦기 위해 행주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행주는 보이지 않았다. '행주가 어디 갔지? 설마 그녀는 행주를 사용하지 않는 건가?' 싱크대 위를 아무리 뒤져봐도 행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저기 한쪽 구석에 걸래처럼 보이는 천쪼라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천을 집어 든 순간, 다시 한번 오만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최 이 물건의 정체는 확실치 않으나, 얼룩덜룩한 이 천에서는 엄청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으로 그녀의 집안일에 대한 수준이 확실해졌다. 완벽한 1 레벨의 초짜 수준을 가진 나의 천사.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다. 이 수준으로 오염된 행주든 걸레든 어떤 것이었든,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랍 속 새 행주를 꺼내어 물기를 말끔하게 닦아 내었다. 그리곤, 행주를 물에 깔끔하게 빨아 내어, 탁탁 털고, 행주 걸이에 잘 펴서 널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봉지를 잘 묶어 밖으로 배출시킬 준비까지 말끔하게 마치고 나서야 설거지가 끝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설거지라서 시간이 꽤 흐르기도 했겠지만, 왠지 내 생에 가장 오랜 시간 설거지를 한 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시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정신적 대미지로 추정했을 때 분명히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고 있는 그녀를 흔들어 깨우고 싶을 정도로...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마음만 훨씬 더 무거워지는 결과가 되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아일랜드 식탁에 앉았다. 지금은 정신적 육체적 대미지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커피 향을 맡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까진 새벽으로 불릴 수 있는 지금시간의 고용함이라 더욱 기분이 좋다.

 '어떻게 그녀를 업그레이드를 시킬 수 있을까?' 지금 기분으로는 절대 좋은 소리를 전달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녀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닌 것 같다.

 

 만약 지금처럼 말없이 대신해 주고 나면 과연 그녀가 설거지의 차이점을 눈치 챌 수 있을까? 눈치채고 나면, 다음부터는 스스로 바뀌지 않을까? 

 우선은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먼저 지켜보면서 그 다음상황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제발 그녀가 지금의 일들을 센쓰 있게 알아차려 주기를 기다려 보도록 하자. 그리고 알아 차리지 못하면 그때가서 천천히 차이점을 이야기 해보자.

 

 나도 완벽하지는 않으니까. 그녀도 완벽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말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다행히 이 상쾌한 아침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