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11. 이효석, 이효석 단편문학
다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몇 개만 꼽자면,
첫째, 비용을 많이 절약 할 수 있습니다.
- 책을 사는 것은 은근히 돈이 많이 듭니다. 정기적으로 서점에 들러 신간을 살펴보고, 책 표지와 머리글, 내용을 훑어보는 습관은 독서에서 매우 중요하고 추천할 만한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여러 권을 살펴보다 보면 아무래도 모두 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막상 집에 오면 읽지 않고 방치되는 결과가 종종 생기고, 읽지 않는 책은 그대로 손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실패한 책을 도서관으로 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 만약 서점에서 입양했다면 꼼짝없이 책꽂이를 내어줘야 합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이 점점 책꽂이에 점령당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기도 하지만, 뽀얗게 먼지만 가득 쌓여 있는 책꽂이는 그리 멋지게만 볼 수 없습니다. 이사할 때도 책이 많으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책꽂이를 내어주기 싫은 책을 소개 할까 합니다. 실로 오랜만에 느낀 감정인데요, 내가 무식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편견은 갖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이효석 단편문학 - 20세기 한국 단편문학을 읽다
지은이 : 이효석
펴낸곳 : 정 씨 책방(리플레이)
출판일 : 17년 2월 28일
표지 디자인은 아주 심플하고 깔끔합니다. 이효석 씨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 이름 있는 작가인듯합니다. 표지에서 뿜어내는 강렬한 포스가 최근 단편소설에 꽂힌 제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것 같아 데려온 아이입니다.
작품당 짧게는 8쪽에서 길게는 35쪽의 단편작품이 총 11편 실려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기에 이런 책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시간이나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혹은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이때가 집중은 제일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등 다양한 시간과 다양한 장소에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질은 재생용지를 사용한 듯 약간 거칠면서 가볍습니다. 활자의 검은색과 표지의 아이보리(?) 색이 만나 정갈한 느낌을 뿜어냅니다. 표지 디자인부터 레이아웃까지 첫인상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100점 만점 중에 70~80 정도.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고는 많이 실망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지만 모르는 작가가 쓴 단편소설은 설렘과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합니다. 글의 문체나 다양한 특징이 부각되어 어떤 작품인가를 맞출 수 있는 정보를 한 껏 기대했건만 첫 번째 작품인 노령 근해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동해를 떠나 러시아로 떠나간 옛 시절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언뜻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현 방식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검은 꽃에서 그려진 1900년대 초반의 삶도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시대적 상황 속의 주인공들이 낯설기만 합니다. 신분계급이 그렇고, 그에 따른 사상과 말투, 복장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읽기가 꽤 어려웠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여기 소설의 일부분을 발췌하였으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어둡고 숨자고 '보일러'의 열로 찌는 듯한 이 지옥은 비르를 꼬이다가 아흐레 동안이나 아래로 떨어진 사탄의 귀양 간 불 비 오는 지옥에야 스스로 비길 바가 아니겠지만, 또한 이 시인의 환영으로 짜 놓은 상상의 지옥이 이 세상의 간교로 찌 놓은 현실의 지옥에야 어찌 비길 바 되랴.'
본문에 나오는 한 문장입니다. 어찌 잘 읽히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11편의 소설을 모두 읽어 보았지만, (내용이 너무 짧아서 쉽게 쉽게 읽히긴 합니다.) 단어의 선택도, 이야기의 흐름과 구성도 영 맘에 닿지가 않아 그다지 추천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도대체 이효석이 누구길래?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이효석 (1907 ~ 1942)
- 1930~42년에 활동한 일제 강점 시 시대의 작가, 언론인, 수필가, 시인이다. 대표작으로는 메밀꽃 필 무렵이 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학창 시절 국어시험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그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라니. 정말 스스로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 있나? 하고 얼마나 자아비판을 했는지 모릅니다. 솔직히 학창 시설 배웠던 모든 지식들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이 정도는 기억을 했어야 하는데 세월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 고전 작품들 중에 유명한 소설을 한 두 편 썼다고 해서 꼭 좋은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 생각이 되바라진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효석은 향년 25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친 작가입니다. 시대적인 비극으로 우리는 천재 작가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시절의 문학이라 불릴만한 작품이 워낙 적다 보니 조금 부풀려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 귀한 시절의 작품과 글이 귀해진 뒤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긴 하지만, 한 편의 좋은 작품을 썼다고 너무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발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작품다운 글 한편 써내지 못하는 초보 글쟁이가 할 생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귀한 금은보석도 스스로 가치를 두지 않으면 그만 일 테니까요. 무식하다 손가락질받아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안 맞는 것을 맞는다고 거짓말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