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글/감상평

감상평) #6. 엄홍길,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꿔33 2020. 2. 22. 20:15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독서모임에 나가세요. 1주에 한 권 혹은 2주에 1권씩이라도 같이 읽고 토론을 나눌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이번 주 독서모임 추천도서인 엄홍길 님의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입니다. 

 

제목 :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가 : 엄홍길(1960년생)

출판사 : 샘터

출판일 : 2015년 12월

가격 : 1만 원

 

 모임의 시샵을 통해 처음 접한 이 책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평소 등산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었지만 책의 표지가 왠지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으며 제목에서 오는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어딘가에 특별히 올라본 적도 없는 초라한 인생인데 오르기도 전에 내려가다니요. 

 

앞만 보고 달려라! 꾸준함으로 승부하라! 등의 긍정적이고 자극적인 책들도 많은데 하필 인생에서 내려가는 이야기를 벌써부터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괜히 심통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에이. 이 책은 말고, 다른 추천도서나 읽어야겠다. 고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러 책을 검색해 보았는데 정작 읽고 싶은 책은 없고 이 책은 서가 귀퉁이에 떡하니 꽂혀 있더군요. 역시. 인기 없는 책인가 보다.라는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책을 빌려 왔습니다. 읽기 싫어도 다음 모임에 들고 가기라도 해서 사람들에게 노력하는 인상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죠. 그렇게 집으로 들고 온 책은 아무렇게나 식탁 위에 던지고 잊어버렸습니다.

 

글 쓰기를 시작한 후로 나름 열심히 끄적끄적 되던 요즘은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나름 글 쓰는 흉내는 내게 된 것 같아서 괜히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했던 주제가 명확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영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뭔가 걸쩍지근했습니다. 두 시간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화면 속에 적힌 글은 A4지 한 장도 안되었으니 스트레스를 받을만했습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어느 작가의 동일한 주제의 글을 읽었습니다. 논리 정연한 말투와 깔끔한 문체, 편집, 고퀄의 이미지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러니까 내가 쓰려고 했던 아니 쓰고 싶었던 완벽한 단편 글이었습니다. 

 

꼭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논리적인 생각들이나 예시까지도 무서울 정도로 일치하더군요. 마치 내가 쓴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2시간 동안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고 나니, 단 한 줄의 문장도 그 사람의 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더라도 이건 마치 초등학생과 전문 작가의 대결처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 차이였습니다. 

 

순간 의욕이 확 꺾이면서 더 이상 글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지더군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네 까짓 게 글은 무슨 글이야 라는 생각에 컴퓨터를 끄고 깊은 수렁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거실로 나가 멍하니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이 책이 보였습니다. 딱히 할 것도 없고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는 지하 10층까지 자아가 처박혀 버릴 것만 같아 뭐라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고는 첫 장을 넘겼습니다.

 

 

책 표지와는 달리 의외로 깔끔한 구성에 왠지 가벼운 재질로 제작되어 첫 느낌과는 다르게 쉽게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더군요. 게다가 작가의 여는 글의 제목은 내려가는 방법이 아닌 "산도 인생도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받았던 부정적인 느낌을 초반에 확 깨어 주길래 그냥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은 점점 내게 위로를 주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먼저다.

 

 - 자신감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마음가짐입니다.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과 잘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다 알고 시작한다고 해도 이론과 실전은 다릅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가야 합니다. 그것이 경력이지요.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해도 될까 말까인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자신감을 상실한 채 부정적인 것들을 먼저 생각하면 분명 실패하고 맙니다. 

꼭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알고 옆에서 직접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심상사성(心想事成)

 

- 어떤 일에 대하여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그것은 분명 이루어진다.

 

꿈이 없으면 이룰 수도 없다. 

 

살아 있는 한 포기란 없다.

 

진정으로 하고 싶고 이뤄야 할 일이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자승최강(自勝最强)

 

-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것

 

 

재능의 부족함에 좌절하여 주저앉아버린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는 주옥같은 말들이 가득하여 책을 읽는 내내 이만한 일로 주저앉으려고 했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 큰 계기가 되어 지금 이렇게 다시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엄홍길 대장의 간단한 소개와 산을 오르게 된 배경, 산을 올랐던 과정과 결과,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하여 나누어져 있고, 그동안 산을 오르며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심플하고도 흡입력 있는 말투로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쓰여 있습니다. 실제로도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만에 다 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어쩌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그의 여정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의 단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주 훌륭하게 인생을 마친 사람의 성공한 자의 잘난 척으로 치부하기엔 책에서 얻은 울림이 너무 큽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책에서 잘난 척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여정을 설명하였을 뿐이죠.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세상 그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작가만의 신비한 경험과 감정이 결합되어 나타난 이 책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젊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글쓰기의 방향을 잡게 된 나의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죠.

다시 딛고 시작하는데 힘이 될 듯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번외의 얘기지만,  "히말라야"라는 영화도 한번 보고 싶을 충동도 일게 만드는 꽤 열정적인 책입니다. 

 

[사진출처 : 엄홍길 휴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