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5. 무라카미 하루키 & 마다 마코토,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
Music is My Life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강렬한 한 문장이다. 1978년 미국의 흑인 가수인 마르시아 하인즈의 노래가 발표되며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노래도 좋지만 문장 그 자체의 힘이 워낙 강렬하여 지금까지도 일종의 주술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나 또한 이 문장에 백칠퍼센트 공감한다. 초등학교 6학년 경주로 떠난 수학여행의 버스 맨 뒷자리에서 친구의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라밤바 La Bamba"가 너무 흥에 겨워 영어인지 스페인어인지 모르는 언어를 그냥 들리는 대로 흥겹게 따라 불렀던 그 순간부터 음악은 내 인생이 되었다.
띵 띠딩~ 띵띠딩~ 띠 디디 띠 디디디~ 띵띠디 띵띠딩!
빠 라바 바일 라밤바~ 빠 라바 라일 라밤바 세네 치 시 운나 뽀 까데 그라시아~
어떻게 그렇게 경쾌하고 신명나는 일렉기타 소리를 연주할 수 있는지. 마치 온몸의 세포에 흥겨움!이라는 마약을 던져 넣어 땀으로 흠뻑 젖게 만드는 그런 마력을 지닌 이 곡의 기타 소리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넘사벽일 만큼 여전히 엄청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닥치는 데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나는 가요와 팝, 락과 메탈, 힙합, 재즈,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이면 무조건 사랑하는 잡식성 리스너로서 인생에 음악을 꽉 채운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아쉽게도 듣고 느끼는 재능만 타고났나 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그런 음악과 관련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썼고, 와다 마코토가 그림을 그렸다.
제목은 또 하나의 재즈에쎄이
2002년 5월 7일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값은 'YES24' 기준 9천 원이다. 까치 출판사
발행된 지 15년이나 된 오래된 책을 이제야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쳐진 행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또한 책이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천년에 걸쳐 읽히는 고전들도 있으니 15년쯤은 그에 비하면 갓 나온 신간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다 보니 오래된 책은 겉표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책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마음대로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겉표지쯤은 가장 쉽게 훼손되는 대표적인 아쉬움이 되는 것 같다. 겉표지는 작가의 의도가 가장 압축되어 보이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 또한 겉표지가 분명 있었겠지만 훼손되어 하늘색 표지만 남아있다. 하지만 15년 전에 발간된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임팩트 있게 간결한 폰트와 심플한 디자인과 색감이 사용되었다. 나는 이렇게 센스 있는 책들이 좋다. 괜히 읽는 나까지도 센스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책의 내용은 더욱더 심플하고 센스 있게 구성되어 있다.
총 스물여섯 명의 재즈 뮤지션을 골라내어 마코토가 그림을 그렸고, 하루키가 글을 썼다. 글은 왼쪽에 그림과 사진은 오른쪽에 배치하여 통일성을 주었으며 이러한 통일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마코토의 그림은 따듯하고 포근하다. 언젠가 하루키의 다른 책에서 삽화를 그리는 작가에 대해 쓴 칭찬을 읽은 적이 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마코토를 이야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액자에 넣어 간직하고 싶은 삽화"라고 평했었다.
그의 평가는 굉장히 적절하게 표현된 것 같다.
헌 책방에 들러 이 책을 싸게 구할 수 있다면 삽화를 오려 액자에 끼워 넣고 집안 한쪽면을 통째로 비워 전시해 놓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새 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새 책은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것이 작품과 작가에 대한 보다 나은 존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글 또한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간결한 문체로 할 말은 다하는 그의 특유의 화법은 이 책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주로 소설 속 주인공의 언어로 표현되던 유식함과 매력은 이 책에서 "그 책의 작가는 나야. 헷갈리지 말라고!"라고 자신을 아낌없이 표현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뮤지션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1~2페이지에 걸쳐 짧게 풀어내었고, 뮤지션의 설명과 함께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LP의 사진도 곁들여 놓았다. 어릴 적 유복하지 못한 환경 탓에 LP는 고사하고 카세트 플레이어 조차 가지지 못했던 나는 이런 것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중학교 시절 CD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친구 놈들 중 한 명이 CD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거실장에 꽂혀 있던 솔리드의 1집 CD가 친구 방에도 한 개가 더 있는 것을 보고 ,
"이 CD 거실에 있었던 거 아니야?"라고 물었더니,
"어. 그건 여동 생거야."라고 말하던 그놈이 어찌나 부럽던지.
"똑같은 CD를 한 집안에서 개인별로 구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그 날 나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처절하게 느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단순히 태어난 집안의 차이에서 오는 불공평함과 불평등을 말이다. 내가 원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날 나는 솔리드 CD와 CD플레이어를 빌려왔었는데, 무려 1주일이나 돌려주지 않고 버팅기며 친구를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참 지질하고 한심하며 소심한 복수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1주일 동안 들었던 음악은 내 마음속의 불평등을 치유해주었다.
이런 지질한 경험을 쓸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하루키처럼 아니면 다른 작가들처럼 '조금만 더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살아봤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은 여전히 아쉬움이다.
지금은 환경이 조금 나아졌으니 시간이 나면 중고 턴테이블이라도 구해봐야겠다. 아마 희귀 템이 되어버린 LP판들은 가격이 많이 비쌀지도 모르겠지만 한 두 개 정도는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될 터이니, 지금이라도 하루키가 말하는 "세상의 훌륭한 소리를 마다하고, 외출을 싫어하는 두더지처럼 이 푸근하고 따끈따끈한 보금자리의 길들여져 버린 소리의 울림"을 느껴봐야겠다.
음악감상실을 겸하고 있는 하루키의 서재에 앉아 그저 음악을 즐기고, 문장을 즐긴다는 그의 하루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재즈가 과연 그가 말한 느낌을 주는지 매우 궁금해 지기 때문이다. 음악은 유튜브나 음원사이트를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커피숍에서 전철 안에서 사무실에서 어디서든 어울리는 그런 책이다. 음료는 커피보다는 맥주나 위스키를 추천하고 싶다. 왠지 재즈 하면 "어두운 바"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럼 술집에서 읽으라는 거냐?라고 불평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연관이 그리 되는 것을 어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집에서 읽는다. 뭘 해도 되는 집에서 말이다.
어쨌든 책을 읽게 된다면 가볍지만 센스 있는 하루를,
그리고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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